물렁거리는 힘 - 약한 것으로부터 리뷰
사진가 황예지
사박의 그림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전에 작은 고백을 해야(만) 할 것 같다. 나는 전시를 보는 행위를 그다지 즐기지 않는다. 시각예술이라는 숭고한 신념 체제를 위배하는 것 같아 껄끄럽긴 하다만 사실이 그렇다. 전시라는 행동은 과시를 떨쳐내기 어렵고 욕망이 다분히 드러난다. 그게 좀처럼 반갑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사박의 회화와 전시에서 전시 행동의 의외성을 발견했기에 나는 그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 싶어졌다.
사박이 전시라고 나를 초청한 곳에서 난처함을 느꼈다. 전시장 이름이 연달아 외지는 곳도 아니었고 뭐라 딱 지칭하기는 어려운 곳이었다. 그러니까, 동네였다. 내가 나고 자라고 사람들이 얼기설기 섞여 지내는 곳. 그럴싸하지는 않은 곳. 불러준 주소에 도착하니 한 아저씨가 일을 하다가 멈추고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입구 언저리에 사박이 서 있었고 온 사방이 삐드득하는 소리를 냈다. 저희는 오래 살았어요, 건물과 나무, 도시의 작은 부품들이 그리 증언하고 있었다. 방문이 열리고 어중간하게 높은 턱을 넘자 나는 사박이 조성한 세계에 도착한 사람이었다. 생활이 묻어나는 물건들 사이로 그림이 앉아 있거나 누워있다. 거기에 늘 있었고 외출은 많이 하지 않은 얼굴이다. 그림들은 먼 산을 보거나 다리를 흔들며 서로를 감응하고 있다. 그 모습에서 약속 시간보다 늦을까 조마조마한 마음, 이동 중에 얼핏 맡은 지루한 하루의 냄새… 전시를 보기 위해 지나친 모든 감각이 이 전시의 프롤로그가 되고 있는 게 명확해졌다. 그 공간이라서 가능했던. 바랜 벽지로 밀폐된 그곳에서 환영의 낱말을 읽어낼 수 있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사박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그림을 보고 무언가가 궁금했다기보다는 같이 손을 뻗어 더듬거리고 싶었다. 나약하고 약한 것. 허술해 보이는, 미완성된, 불완전한 어떤 장면. 떨어져 있는 목장갑, 자전거인데 바퀴가 다 나간, 고장이 난 채로 쓰러져있는, 쉬는 시간에 본 창문 속 앙상한 가지, 하나씩 비어 있고 고장 나있고 낡은 것. 위는 사박이 만들어낸 나열이다. 이 나열을 듣자마자 본인이 어떤 실천을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건 제법 쾌락적인 일이었다. 우리는 만남 이전에 서로 다른 책을 들추며 작품을 더 넓게 포용해 보고자 했었다. 사박이 내게 건넨 책은 다자이 오사무의 『나는 매번 더 나은 실패를 한다 (다자이 오사무의 이별계획)』이었다. 귀가 접혀있는 페이지 여럿 중 한 부분을 옮겨보도록 한다. ‘하지만 자네, 나를 경멸해서는 안 된다. 세상에는 나 같은 종류의 인간도 분명히 필요하다.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톱니바퀴 중 하나다. (…) -신록의 말’ 인간이라는 자리에 회화, 수행과 실천을 끼워 넣을 수 있겠다. 이 문장은 사박의 서정과 미시에 대한 집착적인 접근을 가뿐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 어떤 문장도 사박의 회화에 번역하기 좋은 도구가 되리라 생각한다. 미시의 힘은 그런 거니까. 사박의 회화의 서정은 사람들이 어쩐지 아끼지 않는 부분들, 효율과 광대함을 따지다가 부서져 나온 부산물을 끌어안고 간다. 리어카를 끌고 도시의 파편을 분리하고 수거하는 이처럼 우리는 이런 수집가가 필요하지 않은가. 한 가지 분명한 건, 나는 사박의 회화가 필요했다.
방에 있으면서 감각이 느리게 떠오르고 있다는 사실을 체감했다. 내가 사박에게 건넨 책은 신해욱의 『생물성』이었다. 또 한 부분을 옮겨보자면, ‘내 목을 꼭 움켜잡았다/나는 지구를 떠날 수는 없었다/목성에서 물이 떨어지는 속도/이름 없는 혹성에 대한 자유 연구/그런 것은 나에게/어울리지 않는다./(…) 어떤 물에도 녹지 않을 것이다.’ 이러하다. 나는 처음부터 사박의 회화가 살아있다고 가정했고, 이 책을 고르는 건 나름 편안한 선택이었다. 자신이 선택한 장면을 더 비좁게 자르고, 해상력을 낮추고, 물렁거리게 만드는 사박의 붓질. 진하게 전달하고자 하는 회화들보다 사박의 회화에서 이송되는 게 무수했으며 강력한 생명력을 느꼈다. 전시를 보러 온 사람들도 다리를 까딱이는 사박의 그림들을 발견하리라.
불순한 세계에서 물렁거리는 게 뭐 얼마나 힘이 좋을까. 그럼에도 작은 부품, 이러한 연골이 없이는 세계의 구조가 갖춰지지 않을 터이다. 오래, 하찮게 살아주어서 매우 고맙습니다... 삐드득대는 소리들이 반가웠다. 사박의 회화를 보고서 미시적인 풍경들과 곧잘 대화할 수 있었다. 물은 물에 녹지 않겠구나, 당연한 사실이 신비로 다가올 때가 있다. 슬프고, 애처롭고, 귀엽게 웅크린 사박의 회화를 가만 두고 그 방에서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