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익은 풍경 속을 살다보면 시간의 흐름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까먹는다. 주위엔 건조한 모양들이 태연스레 날 에워싸고 있다. 때때로 삶은 자질구레한 단편들이 전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생활은 특별하거나 극적인 사건 없이 흘러가는 단조로운 순간들의 연속이자, 계속해서 의미 있는 뭔가를 이루지 못함에 대한 상심의 축제이다. 그래서 시시한 삶의 조각들이 서먹하다. 날마다 늘어가는 알약, 구석에 내팽개쳐진 연필, 바람 빠진 풍선, 아무렇게나 베어 문 복숭아, 키우는 고양이의 시큰둥한 자세처럼 미적지근한 모습들이 문득 낯설게 느껴진다.
이처럼 익숙한 장면들로부터 느낀 낯선 인상을 작업으로 내보인다. 나는 삶의 현장에서 포착한 무력해 보이는 이미지나 사물에 내면의 불안, 우울, 무력, 상실, 공허 따위의 주눅 든 감정을 투영시킨 다음 이것을 나름의 조형언어로 소화하여 새로운 형태를 만든다. 대상에 주관적 심상을 섞어 이리저리 주무르는 제스처로 내재화된 형태는, 원본을 흉내 내면서 동시에 배반하는 애매모호한 이미지가 된다. 나에게 작업은 무의미의 더미에서 찾은 티클만 한 의미를 부풀려가는 여정이자, 결함 가진 어설픈 부산물을 미화해가는 여정이다.
주로 회화는 음식 자투리, 고양이, 알약, 풀, 장난감, 사람 등 익숙하지만 어딘가 건조하고, 모자라고, 허약한 주변의 광경이나 대상을 소재로 한다. 이런 이미지를 펼치고, 줄이고, 늘이고, 구기고, 자르고, 쌓아 올리고, 무너뜨리고, 모으고, 흩트려 트리길 반복한다. 그리고 옅은 색감과 부드러운 형태감, 산뜻한 붓질로 계산적인 듯 우연적인, 정적인 듯 생동적인 중립적 형태를 만든다. 붓질의 시행착오를 거친 이미지는 본래의 잔상과 환상이 어우러진 나긋한 실루엣으로 거듭난다.
나아가 평면의 감각에 촉각적 볼륨을 부여하고자 감싸고, 지탱하고, 부풀리는 설치를 한다. 예컨대 버려진 나무액자, 튀밥, 재활용 비누, 일회용 비닐, 택배 상자, 얇은 종이, 수세미, 점토 등 흔히 소비되면서도 언제든 대체 가능한 오브제를 가져와 회화를 지탱하고 꾸미는데 쓰거나, 조형물을 만드는 구성 재료로 활용한다. 이는 대개 낡거나 버려진 고물, 값싼 공산품, 일회용품 등으로 가볍고 이동과 변형이 쉬운 느슨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이를 통해 물렁하고 유연한 성질이 가진 무한함을 피력하며, 거대한 것이 아닌 사소한 것들이야말로 진실한 삶 그 자체임을 보여준다.
금방 사라져버릴 듯 초라하고, 흔들리고, 모자라고, 가냘픈 짧은 마디들을 애증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시시각각 일렁이는 날 것의 기분을 솔직히 드러낸다. 나의 작업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사실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님을 끊임없이 증명하는 과정이다.